잠시 쉬어 가는 코너 / 가요 표절, 어떻게 볼 것인가? (1) > Jazz강좌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Jazz강좌

img_class_01.gifimg_class_03.gif

잠시 쉬어 가는 코너 / 가요 표절, 어떻게 볼 것인가? (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jeyyoung
댓글 0건 조회 4,554회 작성일 10-08-26 22:32

본문


[[가요 표절, 어떻게 볼 것인가?]]

(2010.3.4.5월호, [음악저작권](사단법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의 정기간행물), 유영건(숭실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 KOMCA 전임회장) 교수의 칼럼 중에서 발췌)

(상략)

오늘날 학계나 문화계의 여러 방향에서 "표절"이란 단어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예전에는 표절이 크게 문제가 되어 사회적으로 공론화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작품자의 숫자도 적었고 작품의 수도 많지 않았다는 이유보다는, 남의 것을 부도덕하게 나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창작자는 있는 그대로 그들의 감정과 내면의 심정을 그려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산업화되고 음악으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시대에 와서 표절은 문화와 예술계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표절은 두 가지의 양상으로 일어난다. 하나는 모르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남의 작품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작품을 만드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의도적으로 남의 것을 이용하여 작품화하는 행위이다. 의도적 표절은 나의 생각과 정을 담은 노래가 아니므로 진정한 노래가 아니다. 즉, 허위의 감정이다. 남의 노력과 정신을 훔친 것이며 이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허위의 감정을 전하는 것이요, 문화장물이 되는 셈이다. 최근에 와서 표절의 문제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상업주의적인 배경에서의 작품양산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 표절시비가 일어난 시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향유하고 있기에,피해자는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므로, 법적 구제를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한편 이러한 양상은 과도한 주장으로 자칫 창작의욕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중음악에서 의도적 표절이 아니면서도 표절시비에 휘말리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의도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표절 의혹을 받는 작가의 표절 의도 유무만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피해를 보았다고 하는 작품과의 접촉이 무의식적으로도 있을 수 있으며, 그런 연유로 그 음악적 구조가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어 창작물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작품이 세상에 공표되기 전 양식 있는 작가들은 이에 유의하여야 한다. 대중음악이 양산되는 요즈음에는 가능하면 공표 전에 귀를 열어두고 모니터링을 해보는 것도 본의 아닌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사전에 피할 수 있는 방법이겠다.

가요형식의 악곡에는 유사한 음악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 가능성은 대개 음악의 형식에서부터 시작한다. 보컬을 위한 가요의 경우에 이것은 더욱 세심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다. 기악 연주곡의 경우보다 많은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먼저 가요 악곡의 형식이 정해진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A. B형식을 기초로 이루어지며 길이에도 시간적 한계가 있다. 그리고 조성음악이 대부분이다. 특히 요즈음의 노래는 화성적인 영역에서 전조(Modulation)와 같은 변화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리듬이 정형화되어 첨가되며 음역도 사람의 보컬에 맞게 한계를 가지는 등의 제약이 따른다. 또한 악곡의 전개에서부터 클라이막스의 배치와 같은 정해진 짜임새 역시 유사한 음악의 창작이 이루어지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이다. 또 노래하는 패턴이나 편곡적인 요소 역시 유행의 흐름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양성의 시대에 음악의 유형은 많아도, 악곡에서의 다양한 변화는 없는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업적인 발상의 이윤추구의 극대화가 더욱 부채질한다. 즉, 구매층을 위한 지나친 기획의도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한국대중가요 노래의 틀이 전형으로 있는 셈이며, 보이지 않게 적용되고 있기에 이 조건들이 지나치게 간섭받게 되면 작품이 표절로 오해받게 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그만큼 유사성의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창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보듯 예술가는 기본의 틀을 깨뜨리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여기에 덧붙여 샘플링을 이용하여 노래를 만들면서 상당부분 남의 작품을 도용하거나 아예 일정한 사용료를 지급하고 일부분의 사용을 허락받아 작품화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런 행위는 전자는 범죄행위이며 후자의 경우에도 뭔가 꺼림칙한 모습이다. 예술이 산업의 지배 구조 하에 돈벌이에 종속된 경우의 적나라한 예라 하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자들은 본인이 남의 작품과 비슷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여겨지는 순간, 혹은 작업이 끝난 후에라도 이를 수정하거나 버린다. 창작자의 자존심과 예술가로서의 개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중략)

남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도용하는 행위는 범죄이며 스스로 창작자임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더구나 의도적 표절 행위는 금전적 이득을 노리는 것과 직결되므로 더욱 그러하다. 악곡과 마찬가지로 노랫말의 표절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대중가요에서의 제재상의 편협성은 어제 오늘 거론된 사항이 아니다. 세상에 나오는 대부분의 가요들은 지나치게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 이성에 대한 감정은 인류가 피해갈 수 없는 자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한 분야에 집중되는 제재의 편협성은 상당히 유사한 노랫말을 양산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 역시 상업적인 의도가 작용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작가가 남의 것을 베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양식이기도 하지만, 작가라고 스스로 칭하고 창작하는 행위는 나의 작품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대중에게 공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반인들보다 폭넓은 시야와 깊은 사고는 작가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양식이다. 비록 인간이 이성간의 만남과 헤어짐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 하더라도, 전문 작사가라면 다양한 개성적 표현으로 이를 극복하여야 한다. 말로서는 못할 소통을 노래는 해낸다. 노래가 그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동력은 창작자의 능력이다. 예술이 아닌 오락과 소모성향의 일회성 작품을 양산하는 태도는 지양하여야 할 일이다. 수많은 작품을 양산하는 것이 꼭 창작자로서의 기량이나 능력은 아니다. 노래로서 순기능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편협된 재제 속에서도 나올 수 있는 예술성 높은 노랫말은 고양된 작가의 소양과 품격, 그리고 노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레 개성이 드러나고 유사함도 피해갈 수 있다.

요즈음 표절시비가 일어날 때의 반응은 예전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표절은 피해 당사자가 법에 호소하여 구제를 요청하여야 비로소 법의 제재를 받게 된다. 이른바 친고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표절 피해 당사자 외에 노래를 사랑한다는 많은 이들이 표절을 문제시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은 상당한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하고 공유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노래가 나오면 기존의 어떤 노래와 유사하다느니, 나아가 표절이라는 단어조차 서슴없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네티즌들이 촉각을 세우며 그들이 좋아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뮤지션에 대해 음악물을 모니터하는 일은 이제는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리고 사회 공론화된 정보와 판례를 가지고 이를 비교, 검토하여 섯불리 표절 판정을 내린다. 그런 행위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관심과 고발은 당년히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선호하는 음악인을 중심에 둔 시선이 지나칠 때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아마추어적인 판단이 자칫 음악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로 인해 창작의 열이 저하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표절 시비가 일어나면 과거에 있었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기준을 적용하는 예를 주변에서 보곤 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여 '정태춘'이 정부권력에 저항한 이후 이러한 사전 검열은 사라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사 새로운 기준이 제시된다 하더라도, 필자는 그 기준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염려스럽다. 교묘하게 기준을 넘나들어 합법의 범위 내에서 의도적으로 표절하는 행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작품자의 도덕과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남의 작품을 도용하면서도 들키지 않았거나 혹은 법률적인 책임을 피했더라도, 표절의 의혹이나 이와 관련된 말은 끊이지 않게 나오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표절시비의 대상이 된 작품들은 비교적 알려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두고 두고 표절에 관한 시비는 세간에 떠돌 것이다. 불유쾌한 일일 수밖에 없다. 유사한 일로 몇 년 전, 지금은 작고하신 큰 작곡가 한 분이 필자를 찾아 오셨다. 그 분의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제 자식과 같은 노래들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렇다. 나의 살과 영혼과 같은 노래를 우리 작가는 염원하며 정성을 다하여 빚어낸다. 그래서 나의 작품에 깊은 애착이 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의 작품도 소중하며 그 작품자의 정성과 영혼이 담겨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훔친들 어찌 내 살과 내 영혼이 될 수 있겠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로그인

회원가입

 


개인정보처리방침 | 서비스이용약관 | 모바일버전
Copyright © jeyyoung.com. All rights reserved.